가꾸는 꿈/살아 숨쉬는 내가 되기 위해...

죽음의식에서 보여지는 삶의 의미 - <염쟁이 유氏>

꿈살이 2006. 4. 5. 06:39

 

"언제나 늘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늘 죽음을 준비하라."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20여년전에 함께 근무하였던 직장선배님께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제게 들려주셨던 말씀입니다.

 

늘 현재 생활에 충실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어쩌면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건 자아인 자신의 일이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는 건 자신의 몫이 아니라 염쟁이의 몫입니다.

 

 

광대 유순웅을 위한 1인극 <염쟁이 유氏>.

 

15인의 역할을 스스로 소화해내는 배우 유순웅. 그는 이 연극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한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스스로 놓아 버린 생명의 끈으로 인해 타인이 수습해 주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보았습니다.

 

흔히들 하루하루가 죽음이라느니, 죽음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다느니 하고들 말합니다.

 

누구도 죽음을 거역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두 글자는 사람들에게 아직은 매우 공평하게 다가갑니다. 언젠가 인간에 의해 정복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은 인간이 만들지 않았고, 인간이 선택할 수 없었기에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들 중 가장 공평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염쟁이 유씨>에서 스스로 천하다고 여기면서도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기어이 이어오고 있는 극중 인물 유氏. 

 

그가 내뱉는 대사에는 삶의 애환이 있고, 욕심에 눈이 어두운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고, 위트가 있고, 슬픔이 있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이 보여주는 공연이지만, 거기에는 인생이 있고,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간 바쁜 삶에 쫓고 있고 살았던 우리가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고, 새삼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였습니다.

 

내가 죽어 염쟁이에게 몸뚱아리가 맡겨졌을때 누가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것이며, 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존재가 죽어 없어졌으니 의미가 없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죽은 자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죽은 자의 삶을 이야기 해 주는 것입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많은 격식과 장례절차 특히 염습의 의미를 많이 소개해 주고 있지만, 실제 이 연극은 유씨의 삶과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지?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인지?

 

딱히 방향이나 지표를 제시하지는 핞지만, 관객 스스로가 되돌아보고 생각해 보게 하는, 자아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연극이었습니다.

 

"죽음"

 

기독교에서는 원죄에 대해 신이 인간에 내리는 벌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과정이며, 죽는다는 건 無가 아니라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를 말한다지만, 이 연극 <염쟁이 유氏>를 통해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고, 비로소 또다른 낡은 옷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은 반대되는 삶이 있기 때문이고, 삶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처음으로 묶어서 거둔다는 뜻의 염.

 

염하는 모습을 통해 제 삶의 의미를 거두어 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