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는 꿈/책장을 덮으며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꿈살이 2005. 11. 13. 22:10

유럽의 사람들은 일년내내 일하여 번 돈을 한 달간의 휴가를 위해 쓴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이 이렇게 일년 동안 번 돈을 가장 쓰고 싶어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알래스카 여행이라 한다.

 

수 킬로미터를 가도 주변에 있는 건 자신 뿐, 더 넓은 호숫가에 낚시대를 드리운 채 연어 낚시에 골몰하는 사람들. 그들이 연어 낚시를 하고 싶어 하지만, 진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상태를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세상 사는 가족 얘기들이며, 직장, 친구 얘기, 걱정 거리 등등으로 번민하지만, 이를 자연스레 극복하게 되는 5일쯤 지나면 마음은 빈 속이 된다고 한다. 빈 마음, 아니 초월한 마음이라 해야 할까? 

 

주변에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자연 상태를 체험하고, 원시의 본능을 체험한다. 어쩌면 동양인들이 산사를 체험하거나 속세를 등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수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언젠가 알래스카의 황홀경을 대한항공에 계신 지인을 통해 비디오로 경험하고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가봐야지하는 생각......

 

그런데, 얼마 전에 그 꿈을 대신해 준 일본인 사진 작가 호시노 미치오를 만났다. 신문의 뷱 섹션 신간 안내 코너에서 그가 쓴 책이 번역서로 소개되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사진 작업에 몰두했던 그. 그의 자연에 대한 끝없는 동경과 경외로움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아무런 꾸밈도 수사도 없었다. 그가 느낀 것을 감정 그대로 적어 내려간 이야기. 그가 촬영한 알래스카의 모습이 그대로 책이 담겼다.

 

곰을 촬영하다 곰에게 물려 죽은 진정한 다큐멘터리 작가인 호시노 미치오. 내가 지금껏 경험하고 보아온 사진 작가중 가장 진실에 가까이 다가선 작가였다.

 

그런 그를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에서 만나보길 권한다.

 

여기 이 책을 구입시에 함께 온 몇 장의 엽서를 게재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대신한다.

 

꽁꽁 얼어붙은 극북의 겨울밤 하늘에 소리도 없이 생물처럼 춤추는 차가운 불길......
여느 겨울밤, 거대한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오로라를 보면서 생각했다. 한평생을 마감하는 순간, 누구나 하나의 강렬한 풍경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면, 내게 그것은 아마도 알래스카에서 내내 보아온 오로라일 것이라고.

 

마른 나뭇가지를 모으며 가문비나무숲을 걷는다. 축축한 대기가 느슨하고 따뜻하다. 숲속 카펫에 떨어지는 무스 똥에 물기가 조금 배어 있다. 버드나무의 새싹이 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숲도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만약 살아 있는 것들 사이에 약속이라는 것이 있다면, 자연 속에서 살아온 인간은 그 의미를 알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잊어버린, 사냥하는 생물가 사냥 당하는 생물 사이에 존재하는 약속이다.

 

어느 날 툰드라 저쪽에서 나타나 툰드라 너머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카리부. 그 발굽소리는 알래스카 들판이 품은 생명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드는 소리와도 같다.
...강풍이 잠깐 힘을 늦추는 순간 블리자드의 눈보라 베일이 걷히자, 강을 건너려고 하는 카리부의 행렬이 영광 속에서 실루엣으로 떠오른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카리부들은 이렇게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북극의 설원을 여행해 왔던 것이다.

 

그리즐리 어미와 새끼들. 이렇게 따뜻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

 

어느 겨울날, 알래스카 철도를 탔다.
오전 8시 30분. 페어뱅크스 출발. 극북의 겨울 아침은 아직 체 트지 않았다. 집집마다 반짝이는 불빛과 굴뚝 연기...... 밖은 영하 40도. 극한의 알래스카 들판을 덜컹덜컹 달린다. 가도 가도 새하얀 세상. 겨울철 알래스카 철도를 타면 시간이 흐름이 멎어버린다.

 

주) 알래스카에서는 통상 세스나기를 이용하여 식료품을 외부에서 조달하거나 사람들을 실어 나르지만, 이런 열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열차는 선로에 선 카리부를 보호하기 위해 달리다가 멈춰 서기도 하며, 사람이 손을 흔들면 언제나 열차를 세워 태워 주는 세계 유일의 완행 열차이기도 하다. 

 

북극의 들판을 여행하는 카리부,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때면 나는 늘 한 늙은 인디언을 생각한다. 케니스 누콘. 마을을 떠나 유콘 지류에서 혼자 사는 아사바스칸 인디언. 아마 케니스는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최후의 인디언일 것이다.
.......위대한 알래스카. 이제 그곳에서 한 시대가 확실하게 막을 내리려고 한다.

 

9월의 알래스카 북극권, 새빨갛게 물든 풍경이 한없이 계속되는 들판과 유콘 강이 가을, 가을 또 가을. 차창으로 스쳐 가는 바람에서 벌써 겨울 냄새가 났다.

 

해질 무렵, 호수에서 수초를 먹는 무스, 그 뒤로 맥킨리 산이 석양에 빛나고 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혹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카리부 떼, 물보라를 내뿜는 고래, 연어를 덥석 무는 곰, 그리고 형체 없는 바람의 뒷모습, 백야의 태양......
어떤 생명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도, 카리부도, 별조차도 무궁한 저쪽으로 시시각각 여행을 한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지은이: 호시노 미치오옮긴이: 이규원출판사: 청어람미디어
출판일: 2005/07/23 페이지: 270
ISBN: 8989722691   

책소개
1996년 캄차카 반도에서 죽은 한 야생사진가가 있다.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 속에 살다가, 곰의 습격을 받아 자신이 사랑했던 대자연으로 돌아간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의 자연과 그가 만난 사람들, 신변의 일상과 사진작업,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유려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

19세 때 알래스카의 자연에 매료된 지은이는, 이후 20여 년간 이 곳에 머무르며 자연과 사람의 모습을 소중하게 기록했다. 오로라, 백야, 빙하, 극북의 들판을 이동하는 카리부떼,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위협받고 자부심을 빼앗겨버린 에스키모인 등 극한의 땅에서 조우한 자연, 그 장대한 아름다움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무엇보다도 호시노 미치오는 광활한 자연을 한껏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카메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찬란한 아름다움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그가 남긴 글과 사진은 진정 자연과 인간을 이처럼 이해하고 연민하며 작업한 결과물이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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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소개
호시노 미치오 - 1952년에 태어났다. 10대 후반 청년시절 처음 알래스카로 떠난 이래,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을 사진에 담아냈다. 19세가 된 1973년, 알래스카 쉬스마레프 마을에서 에스키모 일가와 여름 한철을 보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야생동물 사진가 다나카 고조 씨의 조수로 2년간 일했다. 1978년에는 알래스카 대학 야생 동물 관리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알래스카의 자연과 야생 동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진작업을 시작하여 「National Geographic」, 「Audubon」「주간 아사히」, 「아니마」, 「BE-PAL」, 「SINRA」 등의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1986년 <그리즐리>로 제3회 아니마상을 수상하고, 1990년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로 제15회 기무라 이헤 사진상을 수상했다. 1996년 7월 22일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TBS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취재를 시작했다. 8월 8일 쿠릴 호반에서 취침중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무스>, <알래스카 극북, 생명의 지도>, <알래스카다운 이야기>, <이뉴잇>, <여행하는 나무>, <알래스카 탐험기>, <숲과 빙하와 고래-철새 까마귀의 전설을 찾아서>, <숲으로>, <알래스카의 빛과 바람> 등이 있다.

이규원 -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2005년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인터넷 자본주의의 혁명>, <사색기행>,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빛나 보이는 것, 그것은> 등이 있다.
- 자료제공: 알라딘
목차

에스키모가 된 밥 율
짐과 그의 아들 형제
흑기러기의 도박
카리부의 여행을 찾아서
고래의 사람들
카메라를 훔친 이리
어떤 사건
이른 봄
셀리아 헌터
알래스카의 사자
맥코믹 집안 사람들
오카 마사오 씨
버블넷 피딩
알의 결혼식
포틀래치
라운드 미드나이트
열매가 익는 계절
케니스 누콘 생각
새틀라이트 무스
어느 무스의 죽음
112살의 월터
한겨울의 알래스카 철도
오로라가 춤추는 밤
쉬스마레프 마을

- 에필로그
- 책을 내며
- 해설 : 하늘과 바다와 들판을 건너는 바람 사이로
- 특별수록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원고
- 약력 : 호시노 미치오
- 옮긴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