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기호 ·문자 ·숫자 등으로 기보법에 따라 가시적으로 적은 것---악보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어떤 곡이든 상관없이 연주법을 누구나 반복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방법이 있어 오늘날까지 우리는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바로크음악이니 하는 과거의 음악들을 지금껏 감상할 수 있다. 악보의 존재 이유이다.
그런데, 무용에도 이렇게 기록하는 방법이 있다. 무보(舞譜)가 그것이다. 요즈음 모 TV 드라마에서 방영되는 "황진이"의 스토리 전개과정에서도 춤에 관한 내용들이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 속에 무보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뮤지컬 "넌센스 넛크래커"의 연출을 맡으신 강대진 단장님을 통해 그간 내가 가장 궁금해 했던 무용의 기록-무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실 이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해 예정된 모니터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만난 강대진 단장님을 통해 새롭게 공연예술의 다양한 증언들을 듣게 되었다.
60년대 후반 대학 3년시절부터 뮤지컬 무대에 섰다는 강단장님!
음악을 공부하신 관계로 아주 매력적인 바리톤 음색의 소유자이시면서도 대학생에게는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 뮤지컬 배우 오디션현장에 무모할 정도로 과감히 응모한 강 단장님! 심사위원들이 춤 춰 보라는 뜻하지 않은 주문에 우물쭐 거리며 곧게 선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그. 3번의 야단성 재촉에 마지못해 춘 태권무(?). 태권도 태극1장을 무용처럼 보여준 것이 한국적인 남성춤을 갈구하던 심사위원들의 맘에 속 들었단다. 오늘날의 택견과 비슷하게 추셨다는데......
이것이 강 단장님께서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된 인연의 시작이자, 한국 뮤지컬계의 산증인의 출현이다. 그때부터 뮤지컬에 입문하셨으니 어언 40년이 흐른 지금, 다시한번 뮤지컬에 그 이름 석자를 올리셨다.
짧은 지식으로 괜스레 일본의 뮤지컬 이야기를 꺼내 보였다가 무식함이 탄로났다. 그럼에도 한마디 꾸중없이 일본의 뮤지컬 문화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강 단장님!
이번 공연작품 "뮤지컬 넌센스 넛크래커"는 브로드웨이 지하 극장에서 모 종교단체의 조그마한 이벤트성 공연물을 들여오셔서 각색하고 재창작한 공연물이다.
7명의 배우들의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수녀복과 수사복을 입은 배우들이 출입문쪽에서 등장하여 객석에서 노래하고 얘기를 나눈다. 공연내내 이러한 모습들이 곳곳에 보인다. 관객과의 호흡을 위해, 관객 역시 이 뮤지컬 속에서 매우 중요한 배역중 하나이기에 그 대접이 융성하다.
무대는 아주 아름다운 음악의 전당과 같은 모습. 어린 시절 다닌 초등학교의 강당보다 더 세련미와 오밀조밀함이 약간 가미된 배경들로 구성되었다. 길쭉한 창문을 가진 채, 진보라색으로 가려지거나 한쪽이 열려진 모습의 배경들에서 따뜻함이 묻어났다. 나중에 그 창밖으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아름다운 광경이 있다.
오늘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공연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면서 공개녹화가 시작된다. 오늘 공연의 제목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대왕"!
먼저 해설자역을 맡은 신부님역의 배우 송용태의 나레이터로 시작된 공연은 줄곧 코믹하면서도 우왕좌왕하는 우스꽝스런 내용들이 전개된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신부님과 원장수녀님 간에 이뤄지는 발레 장면에서는 그 코믹성이 압권이다. 전혀 발레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신부라는 직업, 거기에도 배우 송용태의 근엄하면서도 다소 우람한 발레리나 몸매는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여성 발레복에, 뒤뚱뛰뚱 걷는 그 모습은 마치 운동으로 단련된 오리의 그것 그대로다.
그런 모습에 진지함이 더해진 신부님과 수녀님과의 발레 듀엣, 차이콥스키의 황홀한 발레음악을 배경으로 온갖 발레 동작들이 제법 흉내내어 지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 그 속에 흐르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전개되는 이야기로 다소 따분해 할 무렵 수녀님들의 과감한 대시가 시작된다. 객석으로 달려든 예쁜 수녀님들께서 잘 생긴 남성 관객을 고르고선(?) 손등에 뽀뽀(?)를 해 달라고 졸라대는데, 섹시함이 아니라 귀여움이 묻어난다. 예쁜 수녀님께 뽀뽀하고 크리스마스 선물 받고......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대왕" 준비과정에서의 에피소드와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선물을 잃어버린 소동을 중심 이야기로 해서 가볍게 코믹으로 터치한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에 대한 아쉬움을 몇 가지 전해야 할 것 같다. 강 단장님께서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연말연시, 일년중 가장 따뜻함이 느껴져야 하는 시기에 아름답고 따뜻한 소재를 택했음에도 그 따뜻함이 관객에게 전달되기에는 1% 부족했다. 조금 더 가슴 따뜻한 감동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관객으로 하여금 좀 더 감정이입이 될 수 있도록, 극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공연 중간에 엉뚱하게도 홈쇼핑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야기 전개중 왜 그 장면이 있어야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만약 꼬옥 필요했다면 그 당위성이 어떤 방법으로든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이야기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스토리 전개에 있어 좀 더 속도감이 있어야 할 듯 싶다.
요즈음 경영계의 패러다임이 고객감동이다. 고객을 감동시키지 않고는 물건을 팔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고객에게 파는 건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파는 것이다. 이는 비단 경영계 뿐 아니라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적용된다.
공연예술에서도 관객없는 공연은 없다. 수요자인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공연은 성공할 수 없다. 관객으로부터 외면받기 때문이다. 뮤지컬 "넌센스 넛크래커"도 예외일 수 없다. 일부 배우들의 가슴 속 깊숙이서 전해져 오는 열정이 그대로 관객들의 가슴을 두들겨 주질 못했다. 관객과 배우들의 노력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뭐라고 할까? 관객을 흡입하는 흡입력이 부족했다고 할까? 여기에다 배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일부 배우들 가슴속에는 열정이 부족함을 알아챘다. 그러기에 더욱 관객과 배우가 우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뮤지컬에서 음악과 춤은 대사나 연기로 표현하기에 부족하거나 표현이 어려울 때 선택되는 도구"라는 강 단장님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음악과 춤은 정말로 절제되면서도 폭발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도구로 선택된 것이니까!
배우 진복자의 마지막 10여분에 걸친 긴 호흡과 빼어난 가창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한 프로가 어떤 모습인지 생각케하고 진한 감동과 여운을 참맛을 보여준다.
부족한 점을 메꾸기 위하여 공연직후 매일같이 배우들과 회의를 한다는 강단장님의 모습에서 더나은 공연을 꿈꾼다. 아직은 초기 공연이라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다면 이제 차츰 회를 거듭할수록 더 나은 공연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 단장님의 그런 열정이 관객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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