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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 보는 뮤지컬 '돈 주앙'

꿈살이 2006. 12. 12. 07:23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

지키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싶어하는 그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

그의 옆을 스치는 사랑조차 보지 못하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

그가 비웃는다 해도

그에게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나누는 행복을 모른다면

결코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오페라 등의 다양한 쟝르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스페인의 젊은 호색한 돈 주앙(Don Juan, 사실 오리지날 스페인 발음은 돈 후앙이다)의 삶과 열정, 사랑, 질투에 관한 이야기를 만든 뮤지컬.

 

그런데 이 뮤지컬 속에는 여러 다양한 코드가 담겨져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 7명의 가수와 20여명의 무용수 그리고 4명의 스페인 악단이다. 때로는 영어로, 때로는 감미로운 프랑스어로 아주 아름답고 호소력 짙은 샹송같이, 때로는 월드뮤직으로 잘 알려진 파두(Fado)같은 음악과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조명, 그리고 스펙터클하면서도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무대 장치, 현란한 플라멩코와 전통적인 느낌이 강한 의상이 있다.

 

흥겨운 라틴음악과 같은 리듬, 다양한 볼거리, 아이리쉬 탭 댄스, 플라멩코 춤 등 이국적인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뮤지컬. 대체로 가수들의 창법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첫번째 코드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문화가 융화되어 녹아 있다는 점.

 

그들의 특성이 모두 춤과 음악에 담겼다. 정열적이면서도 현란한 플라멩코 춤에서는 스페인의 리듬, 춤, 전통의상과 프랑스의 캉캉같은 코드가 뒤범벅되어 있고, 음악에서는 스페인 악단이 연주하고, 스페인 악기를 대표하는 기타와 타악기가 주류를 이루며, 그 리듬은 가벼운 흥겨움이 절로 나오는 라틴음악과 비슷하다. 여기에 프랑스의 샹송같은 감미로움이 남녀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종종 흘러 나오며, 한편으로는 여자 가수들의 카랑카랑하면서도 쩡쩡 울리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지는 호소력 짙은 회한과 슬픔이 배어 있는, 포르투갈의 월드뮤직 '파두(Fado)'같은 느낌이 있다. 파두 역시 스페인 전통악기가 포르투갈로 변형된 작은 기타와 타악기로 연주되며, 프랑스인들에 의해 발굴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두번째 코드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뒤범벅-뮤페라?

 

잘 아시다시피 오페라는 가극(歌劇)으로 흔히 번역된다. 그러나 단순히 음악극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페라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 한다. 첫째,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라야 하며, 둘째 대체로 그 작품 전체가 작곡되어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페라는 원래 라틴어 오푸스(opus:작품)의 복수형으로, '음악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의미한다. 복잡한 종합무대예술로 음악적인 요소와 문학 혹은 시적인 요소(대사), 연극적인 요소(극으로서의 구성과 연기), 미술적인 요소(무대장치나 의상), 무용적인 요소 등이 합쳐진 매력적인 쟝르이다. 이 점에서는 뮤지컬과 맥을 같이 한다.

오페라는 원래 대사에 음악을 붙인 것이며, 음악은 독창과 합창 및 관현악으로 구성된다. 또한 오페라 가수는 목소리의 높이, 종류 등에 따라서 배역이 결정된다. 극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줄곧 오케스트라 음악이 흐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 양식을 Musical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발달한 대중 예술로 음악 특히 노래가 중심이 되어 무용(춤)과 극적 요소(드라마)가 조화를 이룬 종합 공연물이 뮤지컬이다.

원래 Musical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대중연극의 한 분야를 차지하는 Musical Comedy, Musical Play 등을 일괄된 약칭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Operetta의 방식을 도입한 대사극과 극적인 가창과 혼성으로 이루어지고, 극적인 의미를 지닌 춤을 첨가한 것이 Musical인 것이다. 물론 이야기 소재는 Comedy, Melodrama, 풍자극, 환상극, 문학작품, 희곡 등 자유롭고 다양하며, 낙천주의, 행동주의, 휴머니즘, 유우머, 위트 등의 미국적 기질을 반영하는 특징이 있는 쟝르이다. 또한, 빠른 진행, 로맨틱한 선율, 재즈적인 리듬감, 가수의 매력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들도 다수 있으며, Drama와 Opera 또는 오페레타(Operetta,작은 오페라를 뜻함), 무용극과 현대적인 화려한 쇼가 한데 모여 있다는 특성이 있다.

 

한편, 뮤지컬의 고급화와 오페라의 대중화의 접점인 뮤페라도 있다. 뮤지컬과 오페라의 영역 확대로 인해 최근 이 둘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오페라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가 하면 뮤지컬이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뮤지컬도 유럽의 오페레타가 미국으로 건너온 후 유랑극단과 춤, 재즈.팝과 결합돼 탄생한 음악극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마이클 라치우사의 '연인과 친구들'에서 뮤지컬 출신 배우와 오페라 출신 성악가들이 한 무대에 선 경우처럼 최근에는 오페라 극장이 아예 뮤지컬 작곡가를 상주시켜 신작을 위촉하여 초연하는 경우도 있다. 

또 뉴욕 현대오페라센터는 지난 해 초 콜레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셰리'(마이클 델라이라 작곡, 수전 얀코비츠 대본)을 상연하면서 전반부에선 1막을 뮤지컬 캐스팅으로, 후반부에선 오페라 캐스팅으로 상연하여 오페라 캐스팅에선 탁월한 발성을, 뮤지컬 캐스팅에선 연기와 동작의 열정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49년 이탈리아 태생의 베이스 에지오 핀자(1892~1957)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브로드웨이로 진출, 뮤지컬'남태평양'의 주역으로 출연한 이래 오페라 가수들은 스스럼 없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등 오페라 가수들의 뮤지컬 배우 전업도 이제는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오페라와 뮤지컬의 크로스오버는 극장이나 가수의 교환으로 그치지 않는다. '포기와 베스'를 비롯,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 존 애덤스의 '중국의 닉슨', 존 코릴리아노의 '베르사이유의 유령'등에서 오페라의 음악과 무대는 뮤지컬적 요소를 도입하였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뮤지컬을 관람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브로드웨이 출신 연출가나 무대 디자이너가 오페라 무대에 진출하는 것도 이젠 뉴스꺼리가 되지 못한다. 오페라 제작 과정에서 워크숍과 시연회를 도입하거나 가수들에게 왈츠.탱고.펜싱을 가르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한다. 오페라 무대에서 소프라노가 화려한 콜로라투라 악구를 부르면서 훌라 후프를 돌리는 것도 이젠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렇듯 오페라와 뮤지컬, 그 접점인 뮤페라까지 경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크로스오버현상이 두드러진 것이 뮤지컬 '돈 주앙'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 에스파니아의 전설적인 방탕자, 세비야의 돈 주앙를 인물로 설정하여 그 시대의 의상을 재현하고, 대사없이(간간히 무대에서 소리치며 절규하는 고함만이 유일한 대사라면 대사) 음악으로만 스토리를 엮어간다는 점에서는 뮤지컬 '돈 주앙'은 오페라다. 그러나, 배우들의 음역이 오페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점과 추구하는 음악 역시 오페라의 성악적 요소와는 상당히 구별된다는 점, 그리고 화려한 플라멩코 댄스의 영역은 '돈 주앙'이 뮤지컬임을 확연히 구별짓게 한다. 

 

세번째 코드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

 

프랑스 뮤지컬은 대체로 고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며, 여기에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의 문체가 어우러져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특징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의 프랑스 뮤지컬은 노래와 댄스를 함께 하는 영국이나 미국의 뮤지컬 배우들과는 달리 노래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배우가 구분되어 전문화되는 특성을 지닌다. 프랑스 뮤지컬은 노래의 비중이 매우 커기 때문에 주인공의 안무는 최소화되고, 주인공들 뒤에 별도의 안무팀이 배치된다. 그만큼 프랑스 뮤지컬은 음악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짙다.

 

 

 

뮤지컬 '돈 주앙'도 예외가 아니어서 무대에서 배우들은 대사없이 음악만으로 스토리를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7명의 가수와 20여명의 댄스들은 서로 분야를 엄격히 구분하여 가수는 노래만 부르고, 댄스들은 춤만을 추구한다. 이는 또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로 파리 최우수 뮤지컬상 및 최우수 연출가상 등을 수상하며 클래식과 모던을 넘나드는 특유의 감각적이며 예술적인 연출력을 입증한 바 있는 질 마으(Gilles Maheu) 뮤지컬의 특성이기도 하다.
 

또한 프랑스 뮤지컬 음악은 전체적으로 전통 샹송에 충실한 곡으로 비트보다는 리듬에, 리듬보다는 가사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데, 뮤지컬 '돈 주앙'도 예외는 아니다. 다소간 시적인 영역처럼 보여지는 가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래서 공연보다 음악이 더 눈에 띄고 귀에 더 도드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렌치 팝과 전통의 샹송의 장점들을 잘 접목시킨 음악들이 뮤지컬 '돈 주앙'에는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코드 외에 뮤지컬 '돈 주앙'에서는 현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악단의 배경음악 연주와 춤, 그리고 의상들에서 집시내음이 자욱하다. 특히 안달루시아의 댄스와 의상, 그리고 <부끄럽지도 않니>, <넌 동정심도 없니>에서는 너무도 애절한 집시 선율이, 엘비라의 노래와 남편 라파엘과 연인 돈 주앙의 결투를 막고자 절규하는 마리아의 음색에서는 포르투갈의 월드뮤직 "파두(Fado)"의 Amalia Rodrigues의 슬픔과 회한, 기다림이, 주인공 돈 주앙에게서는 이브몽땅의 매력적인 샹송이 허무와 우수에 젖어 있다. 여기에다 엘비라,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천사>에서는 아일랜드 여성음악가들이 뭉쳐진 Celltic Woman의 멋과 맛이 있다.(약간의 성스러움이 부족하긴 하지만......)  <홀로>에서는 재즈풍의 섹스폰 소리가 사랑하고는 있으나, 사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돈 주앙의 짙은 외로움을 뱉어낸다.   

 

이렇듯 다양한 코드들이 어우러진 조합임에도 공연 뒤에 남겨진 아쉬움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일.

 

뮤지컬 '돈 주앙'은 호색한 돈 주앙의 철학이나 방법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앙(Don Juan)>은 음악을 통해 유명한 바람둥이의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돈 후앙의 호색적인 철학이나 방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한 것과 흡사하다. 오히려 <돈 후앙>의 그것처럼 연출가 자신의 뮤지컬 스타일이라는 틀 안에서 여러가지 음악의 재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화려한 조명과 춤을  어떻게 다채롭게 구사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음악이 라이브 공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에도 짙은 서운함이 있다. 라이브 음악이라면 그만큼 음악에 감동받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스페인 악단의 라이브 음악으로 그나마 위로를 삼을 수밖에......

 

에너지 넘치고 때론 사랑의 슬픔을 호소하는 듯한 안무, 보는 이를 도취시키는 섬세한 몸짓, 힘차고 대담한 손뼉치기와 발 구르기 등 플라멩코 춤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는 뮤지컬 '돈 주앙'

 

 

 

여기에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젊음을 상징하는 블루톤이 주류를 이루는 변화무쌍한 조명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어디 그 뿐인가? 원형의 무대는 시시각각 변하는 배우들의 표정과 의상들을 관객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서비스된다. 특히 회전되는 원형 무대의 가장자리 꼭지점에서 7명의 가수들이 각자 홀로선 존재로 노래할 때, 그들 모두에게서 내 마음속의 돈 주앙을 발견하게 된다. 

 

벽을 이용하여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하나의 벽 사이에서 두 대립되는 인물들의 모습이 원형무대에서 회전되며 보여진다든가, 실루엣 기법을 조명과 조화시켜 활용한다든가, 엘비라의 노래 중 왼쪽 자막에 사람의 얼굴인 듯 움직이며, 복수와 연관된 사람들의 마음-악마, 흥분-을 표현한 무대꾸미기는 관객에게 또다른 솔솔한 재미를 선사한다. 반신반의, 번민하는 모습, 고뇌하는 모습, 옅은 회색 얼굴, 슬프고 실망스런 얼굴, 마치 태아의 얼굴같은 모습은 어쩌면 가졌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갈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돈 주앙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칠 맛 나는 스페인 악단의 음악 해설과 리듬에 맞춘 스페인 춤은 아주 적절한 양념에 다름아니다. 결투 장면의 넘치는 박력과 박진감은 거의 펜싱칼로 추는 춤에 더 가깝다. 이 결투 장면은 실제로 등장하는 붉은 망토의 투우사가 아니라도 붉은 망토의 투우사와 소의 결투를 보는 듯 하다. 

 

라파엘의 칼 끝이 돈 주앙의 가슴을 찔렀을 때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흘러내린 붉은 천. 그것은 돈 주앙의 피이자 아무나 사랑한 댓가이다.

 

희극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뮤지컬과는 달리 비극으로 끝나는 뮤지컬 '돈 주앙'은 세속적이고, 환락적, 육체적 일회성 사랑이 만연한 우리 시대의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그많은 사랑과 물질을 소유하고 누리면서도 늘 외롭고 고독한 바로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돈 주앙의 절규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