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다.
사무실 창 너머 빌딩 숲 사이로 희뿌연 하늘이 보인다.
가을날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집시음악의 거장 Sergei Trofanov
의 Gypsy Violin선율이 오늘 같은 날에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에 놀란다.
가장 감성적이면서도 여운이 남는 바이올린 선율은 한국적인 정서와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길거리를 거닐다 가도 그의 곡이 흐르면 절로 발걸음이 멈추게 된다. 한 십여 분을 한 자리에 멈추어 서서 듣고 있노라면 감정이 풍부해 지면서 우리는 또하나의 인생으로 빠져 들게 된다.
나 역시도 클래식에 관심을 촉발시킨 계기가 그의 "Gypsy Yoyagy"때문이었다. 그의 음악은 삶에 혹은 외로움에 지친 시간들을 망각하게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진 세계로 인도하는 마력이 있다.
'집시와 우리는 무엇이 통하길래?'
괜한 의문을 품고서 2주 전에 열렸던 영상클래식 콘서트 "Music of Families"를 그려 본다.
그날 콘서트는 주제에 어울리게 가족이나 자매 혹은 부부 등이 연주하는 곡들로 채워졌다.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의 "Piano Sonata for Four Hands D-Major K.381"은 Martha Argerich & Nicolas Economou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하였다.
이 곡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생을 위해 희생된, 모차르트보다 5살이나 연상인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Nannerl)
과 모차르트 자신을 위해 작곡된 곡이다.
위 그림은 난네를과 모차르트가 그의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1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이 4개의 손을 교대로 주고 받으며 연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 날 이 곡도 연주자인 Martha Argerich & Nicolas Economou에 의해 같은 방식으로 연주되었다.
Piano Duet의 연주법에는 2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이 각각 동시에 연주하는 방법과 1대의 피아노 앞에서 두 연주자가 4개의 손을 교대로 주고 받으며 연주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날 첫 곡은 후자의 경우를 감상한 것이다.
두 개의 손과 두 개의 손, 마치 네 개의 손이 하나의 손처럼 소리를 낸다. 연주되는 선율들이 참으로 평화롭다. 마치 한 사람의 몰입이 빚어내는 멋진 하모니같다. 교차되는 손에 의해 연주되는 곡의 선율이 자유자재다.
두 개의 손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소리일 것이건만, 여전히 나는 하나의 손이 내는 소리로 듣고 있으니, 내 귀의 이상인가? 내공의 부족인가? 차라리 내 상식이나 공부의 부족이리라. 아는 만큼 들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혹은 강과 약, 혹은 엇박자로, 조화롭고 신기하다. 한 손, 두 손, 세 손, 네 손.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곡, 여기에다 연주자의 가벼운 모션까지 양념으로 곁들여지니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가 된다.
두번째 감상곡은 2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이 각각 동시에 연주된, 그래서 긴밀한 호흡일치가 필요한 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의 "Concerto for Two Pianos C-Major BWV1061"였다.
이 곡은 연연생 자매로 벨기에 출신이면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Katia Labeques와
Marielle Labesque가 연주한 곡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카티아와 마리엘 라베크 자매는 그들의 흠잡을 데 없는 협연으로도 유명하지만
훌륭한 음악가 정신과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 스트라빈스키, 거슈윈, 그리고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등 폭넓은 범위의 레퍼토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erlin Philharmonic),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New York Philharmonic),
필라델피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Philadelphia),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Vienna Philharmonic)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과 공연을 하였으며 Semyon Bychkov, Riccardo Chailly, Sir Colin Davis, Charles
Dutoit, Jesus Lepez-Cobos, Zubin Mehta, Seiji Ozawa, Sir Simon Rattle, Giuseppe
Sinopoli, Leonard Slatkin, Michael Tilson Thomas 등의 지휘자들과도 함께 공연했다.
영국
BBC의 타마신 데이 루이스가 이들의 삶과 음악 인생을 소재로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1992년 10월에 영국에서 방영되었으며 소니 클래시컬 사는
이 다큐멘터리를 “에마 바르닥의 사랑”(The Loves of Emma Bardac)이라는 타이틀로 출시한 바
있다.
이 곡은 주거나 받거니 순차적으로 연주되며, 쉼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피아노 건반의 파격이다. 통상적인 피아노 건반의 검은 것과 흰 것이 바뀌었다. 여기에 조심스럽지 않은 몰두가 엿보인다.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고서도 자신만의 연주가 가능하다.
다소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반복, 정말로 상대 연주자를 의식하지 않을수야 있겠는가? 오직 호흡의 일치와 어울림, 그리고 마음의 합심일터...... 리듬을 타면 되리라. 시원한 여름비가 창밖을 타고 내리르 듯한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Adagio. 무언가 성스럽고 안타가운 사연이 가슴을 타고 흐르는 듯 하다. 약간의 만돌린 같은 피아노 소리. 단순 반복적인 리듬감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연주가 이채롭다.
Presto. 동생의 독주가 이어진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언니의 참여가 있다. 지속적으로 피아노만 연주되다가 어느 순간 현악기의 울림이 가세한다. 울림과 떨림의 만남이다. 다섯손가락의 마술. 피아노 단독 악기로 연주되다가 다시금 오케스트라가 뒤를 잇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가 있다.
한편, 바하는 이 곡을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 단체인 Collegium Musicum을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세번째 감상곡은 빈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Strauss, Johann, the Elder(1804~1849)의 자녀 중 형제 간인 Johann Strauss(첫째) & Joseph Strauss(둘째)가 의견을 모아 작곡했다는 "Pizzicato Polka"였다.
여러 바이올린과 첼로의 퉁김소리, 발현주법. 음색이 다양하지는 못하지만, 여린 아기의 귀여운 발짓같은 발랄함이 있다.
네번째 감상곡은 Giuseppe Verdi(1803~1901)의 "Brindisi from Opera
멋진 노래에 맞는 멋진 의상과 가벼운 기분, 축배의 잔, 그리고 샴페인. 음색이 풍부하고 힘있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탁월한 외모 덕에 명성이 과장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곡으로는 우리에게 '솔베이지의 노래'로 너무도 유명한 Edvard Grieg(1843~1907)의 "Piano Concerto A-Minor Op.16"이다.
이 곡은 그의 사랑하는 부인이자 여성 성악가인 니나 하게루프에게 헌정한
곡이다. 기쁨과 정열, 환희와 사랑의 헌정곡.
크로아티아가 나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Maxim의 편곡으로 감상하였다. 막심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현존 최고의 속주자. 그의 힘과 정열, 매력이 넘치는 해석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집시음악에 이어 "얼후(erhu)"라는 중앙아시아 이란에서 발생된 현악기로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맛도 가슴을 파고 든다.
우리의 해금과 같은 2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악기로 알려져 있다. 바이올린 만큼 음색이 다양하진 못하지만, 애절함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잔잔히 흐르는 애잔한 클래식 음악, 얼후로 연주되는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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