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v. Beethoven(1770-~1827)
Sonata No.14 in c-sharp minor, Op.27, No.2 (월광)
한참동안 조바심이 일었다. 단절된 그 무엇이 마음을 얼어 붙게 하였다.
정지된 듯 현실과 괴리된 상황. 환히 밝아오는 새벽의 다가섬으로 시작된 듯 하였으나, 시간이 정지된 듯 하였다.
굳어 버린 마음에서 활동적 기백이 살아나고, 마음과 손, 그리고 몸이 마침내 혼연일체를 이루기 시작한다. 밝은 달밤의 열정이 건반을 비추듯 음들이 춤을 춘다.
검고 흰 무대 위에서 열정으로 뜨거워진 발들이 무수한 음표를 쏟아내고 있다. 달빛에 취한 듯 미친 듯 광분의 춤을 녹여낸다.
잠시 전의 그 단절은 어디로 갔는가? 흐느적 거림에 힘과 속도가 담겼다. 정신없이 흔들림이 난무하는 광기, 쏟아져 내리는 달빛들을 한줄기 남김없이 모두 다 밟으며 마음으로 담아낸다. 그것이 대비되는 무대의 빛깔에서 열정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현의 울음으로 공간에 존재한다. 그 광열한 울림, 광기를 품은 열정만이 뜨겁게 퍼지고 있다.
긴장과 실수가 살짝 읽혀졌지만, 땀을 훔치는 그녀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박수로 보답한다. 연주가에게 관객이 매우 익숙한 곡은 지나치게 대비되기 때문에 어렵고도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곡을 고른 용기와 시도 그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작년과 달리 긴장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에서 무대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우리의 연주자들은 서양의 연주자들과는 달리 무대에서 관객과 자연스레 호흡하며 그 순간을 즐길 줄 모른다. '연주자 자신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 관객도 즐거운 것이고, 그것이 좋은 연주자를 낳는 밑거름일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때늦은 드나듦이 있었다. 열정과 호흡을 끊는 소란스러움. 음악을 즐기는 자라면, 적어도 준비와 기다림이 필수임을 알 터인데,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F. Liszt(1811~1886)
Notturno No.3 (사랑의 꿈)
&
F. Kreisler(1875~1962) - S. Rachmaninoff(1873~1943)
Liebesleid (사랑의 슬픔)
Liebesfreud (사랑의 기쁨)
드디어 그녀가 본색을 드러낸다. 서정성 짙은 선율이 이 공간을 점유하며, 공간 속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마침내 삶에 있어 기쁨과 휴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달콤한 것인지 소리로 보여주는 것이다. 느림과 여유 그리고 서두름과 여백.
그녀는 소리를 들려 주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저 듣기만 해도 좋으리라. 잡다하고 복잡한 생각일랑 거기에 접어 두자. 흐르는 소리를 따라 마음을 실으며 여백의 美를 즐기라. 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는 건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공간 속으로 그 떨림이 전달될 때까지 멈추고 또 멈추리라. 그 끝의 종말에 서서 느껴보라. 그리하면 당신은 어느새 행복에 충만할 수 있으리라.
삶이란 쉼없이 쫓다가도 문득 하늘을 우러러 미소를 지을 수 있어야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 귀에 익은 선율에도 반가워하고, 그 일탈에도 즐거움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면 어떠한가? 여백을 채우며 그리는 울림이 있고, 또 지우고 그리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그라들 때까지... 검고 흰 무대 위를 떠난 마음을 높이 들고서 그 음의 퍼짐을 음미하는 여유. 그 여유가 지금 이 공간을 채우고, 마음을 채운다.
함께 함이란, 그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감이고, 그 마음이 되어 봄이다. 우리는 그것을 공감이라 이름부른다. 공간 속에서 전해지는 공감의 맛이 상쾌하다. 싱그러움이 있다. 이런 것을 앎이 여유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여유와 공감을 조화롭게 보여준 그녀의 연주는 내면의 충만과 만족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여유와 감동은 만족에서 비롯된다. 열렬함 위에 멈춤이 있고, 여운이 잠시 스치듯 지났다. 그리곤, 일상으로의 돌아감이 있다. 그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연속이며, 삶의 부분이며, 반복같지만 창조다.
마지막 음을 위한 격렬한 춤의 향연 뒤, 공간 속에 멈춰버린 白手가 아름답다.
R. Schumann(1810~1856)
Fantasie in C Major, Op.17
소리로 무언가를 표현하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더군다나 반짝반짝 빛나는 서로 상반되는 건반으로 현의 울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중용과 아름다운 낭만의 매력이 있다. 전혀 상반되는 것이 조화를 이뤄 화음으로 만나니 이것이 중용이요, 그 소리 세계에 사람들의 감정이 조절되고 위안을 받으니 그것이 낭만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고 다양하지만, 소리를 그것도 현의 떨림으로 우리들 가슴에 감동을 전해주는 것도 멋진 마음 표현법이다. 우리 가슴은 떨림으로 감동을 받는다. 긴장과 흥분, 기쁨과 슬픔 그리고 놀람이 있을 때, 우리는 가슴이 떨린다고 표현한다. 그 가슴을 떨리게 해 주는 기폭제인 소리는 공간을 매개로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마음에서 손으로, 손에서 건반과 현으로, 현은 공간 속으로, 공간은 다시 사람의 가슴으로! 이 얼마나 다채롭고도 아름다운 전달과정인가? 생물과 무생물을 넘나들고, 뜨거움과 차거움을 넘나들고 있음에도 조금의 손실은 커녕 오히려 더 큰 감동으로 전해지는 전달체계가 실로 놀랍기만 하다.
또다른 표현매체인 그림이나 문학은 빛과 눈을 통해 가슴으로 인식하게 되지만, 음악은 공간의 울림과 귀를 통해 가슴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어쩌면 음악은 공간예술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표현 매체와는 달리 더 많은 단계의 전달과정이 있음에도 결손은 커녕 더 큰 감동으로 다가서는 건, 모든 매개체 즉, 자연 그 자신이 숨을 담아 전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리는 자연이다. 그저 주어진 소리가 아닌 마음의 표현도구로서의 자연은 진실되고 위대한 것이다.
여기에 그 즉흥적 현장적 분위기와 감점까지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달되니 더 없이 청중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다.
오늘 지금 우리는 그 소리의 황홀에 취한다. 그녀의 마음, 그 충만한 행복이 자연에 실려 내 가슴에 감동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녀는 늘 저렇게 아름다움을 토해낼 수 있을까? 속상하거나 언짢을 때에도 저렇게 소리로 그 감정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전할 수만 있다면 참으로 멋진 삶이 될 것이다. 멋지게 그 감정을 토해낼 수 있으니......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밝고 맑은 서정성이 공간을 채운다. 관객은 그것을 그대로 줏어담아 가슴에서 우러나는 감동을 머리로 소화한다. 그것이 피아노가 가진 매력이고, 그것을 전하여 주는 것이 연주자의 행복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흘리면서 우리에게 그 사이를 읽어 줄 것을 요구한다.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곳엔 연주자의 마음이 있다. 맹렬한 대시 속에서 마지막에는 강하면서도 긴 여운으로 끝맺는 연주스타일.
떨림이 떨림을 낳고 그 속에 다시 떨림이 운다. 소리와 소리들의 결합. 조금전 소리와 연이은 소리들의 낳음과 이어짐은 결코 같지 않음에도 함께 한 공간에서 찰나의 시차를 두고 함께 공존하며 섞여 질서를 이루고, 역사를 이룬다. 혼돈인 듯 하나, 질서가 있고, 끊어진 듯 하나 이어짐이 있다. 그렇게 역사는 흘러 가는 것이고, 그것이 자연이 아니던가!
오늘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었다. 누리지 못하는 조바심이 시종일관 계속되어 아쉽게도 볼 수는 없었지만, 여운을 즐길 줄 아는 그녀의 연주스타일이 내 음악여행에 있어 커다란 휴식이 되어 주었다.
오늘도 난 그렇게 음악여행을 즐기며 산다.
조지현의 피아노 앨범 VI
Love Forever
가슴 가득 차오는 사랑의 기쁨...
가슴 가득 저미는 사랑의 슬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인류의 영원한 주제 '사랑'의
다채로운 빛깔을 담아낸 주옥같은 피아노 작품과 함께 하는
감미로운 시간, 조지현의 여섯 번째 피아노앨범 Love Forever
일 시 및 장 소 : 2007년 5월 10일(목) 저녁 8시 서울 금호아트홀
주 최 : 뮤직필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단국대학교
회 원 권 : R석_3만원 / S석_2만원
공 연 문 의 : 뮤직필 02-706-1481~2, http://www.musicphil.co.kr
▨ 공.연.개.요
조지현의 피아노 앨범 여섯 번째 공연 'Love Forever'
'조지현의 피아노 앨범'은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청중들에게
좀 더 쉽게 음악을 이해하고 편하게 감상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피아니스트 조지현의 바람에서 비롯된 기획 시리즈이다.
10년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2002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그동안 '환상', '시', '그림', '춤', '자연'을 주제로 삼아
참신한 기획, 차별화된 무대와 수준 높은 연주를 꾸준히 선보임으로써
회를 거듭할수록 청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에게도 자극을 주며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이번 공연에서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을 주제로 한
달콤한 사랑의 노래들을 들려주게 될 것이다.
앞으로 조지현의 피아노 앨범 시리즈는 'Family and Soul',
'음악과 우정', '여행지에서 생긴 음악', '음악의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2011년까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 연.주.자.소.개
피아니스트 조지현
'분명한 색깔과 목소리를 지닌 개성 있는 연주자', '서정적인 연주가 돋보이며,
투명하고 풍부한 색채로 노래하는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고 있는 조지현은
끝없는 학구열과 실험정신으로 매회 색깔 있는 무대를 선보이며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왔다.
이젠 중견 피아니스트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다양한 무대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도미하여 줄리어드 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맨하탄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하였다.
국내에서는 김종애, 김미숙, 서계숙 교수를, 국외에서는 Oxana Yablonskaya,
Constance Keene, Ada Kopetz-Korf 교수를 사사하였다.
IBLA Grand International Competition(3위), Trani International Competition(디플로마),
육영 콩쿨에서 입상하였으며, 특히 뉴욕의 Artists International Competition 우승으로
Carnegie Recital Hall에서 데뷔 독주회를 가졌고, 이후 Artists International Competition의
Alumnus Winner로 선정되어 뉴욕 Merkin Hall에서 초청 독주회를 가졌다.
예술의전당 주최 '유망 신예 초청 연주회'와 '젊은 연주자 시리즈' 초청 독주회,
월간 '피아노 음악' 주최 '영 콘서트' 출연, J.M.(Jeuneses Musicales) 시리즈 데뷔 독주회를 가졌고,
뉴욕 한국문화원 초청 독주회, 월간 '피아노 음악' 주최 '건반 위의 비르투오조 2001' 독주회,
금호아트홀 주최 초청 독주회(금요콘서트), 금호리사이틀홀 주최 쇼팽 녹턴 독주회
(쇼팽 피아노 전곡 기획 시리즈), 음연 주최 초청 독주회 등을 비롯한 다수의 초청 독주회를 가졌다.
또한 코리안 심포니, 울산시향,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대 동문 오케스트라,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 Orchestra of the Swan, Elim Symphony Orchestra,
Kaunas Chamber Orchestra 등과 협연하였고, 유엔 본부 초청 '세계 평화를 위한 음악회',
드보르작 서거 100주기 기념 실내악 페스티벌에서 Panocha String Quartet과의 협연,
부천 시향 실내악 페스티벌에서의 연주,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전곡 연주와
실내악단 '화음'의 객원 멤버로 정기적인 실내악 연주를 하는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2002년부터 주제가 있는 기획 독주회 시리즈 '피아노 앨범'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6년 교향악 축제에서 성남시향과 협연하였다.
Brooklyn Conservatory of Music(뉴욕 소재)과 서울대, 단국대 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조지현은 학교에서는 학구적인 스승으로,
무대에서는 활발한 연주가로서 독창적이고도 모범적인 음악가상(像)을 구축해 가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 프.로.그.램
L. v. Beethoven Sonata No.14 in c-sharp minor, Op.27, No.2 (월광)
F. Liszt Liebestraum: Notturno No.3 (사랑의 꿈)
F. Kreisler - S. Rachmaninoff Liebesleid (사랑의 슬픔)
Liebesfreud (사랑의 기쁨)
Intermission
R. Schumann Fantasie in C Major, Op.17 (환상곡 다장조, Op.17)
'가꾸는 꿈 > 살아 숨쉬는 내가 되기 위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악, 그 자유로움으로의 여행-퍼커셔니스트 박윤 (0) | 2007.05.31 |
---|---|
그림자 청년들과 볼거리, 오페라 리날도 (0) | 2007.05.24 |
대화의 상실은 죽음 (0) | 2007.05.14 |
충과 효를 모두 이룬 꿈, 화성에서 꿈을 보았다. (0) | 2007.05.06 |
클라라가 되고픈 피아니스트 임화경의 슈만 사랑two (0) | 2007.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