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人에게
佳人에게
높고 파아란 어제의 하늘은 초롱초롱 영롱한 아기의 눈망울처럼 맑고 아름답더니, 오늘은 왠지 우울하고 찌푸린 하늘입니다.
창을 타고 흘러 내리는 빗물을 보며 상념에 잠겨 봄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호사일까요?
지난 주말에 다녀 온 치악의 紅葉이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모처럼의 아름답고 즐거운 山行이었습니다. 떠난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季節에, 붉은 비단옷으로 갈아 입은 치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그리도 흥분되게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딛고 설 수 있는 아슬아슬한 암릉지대인 사다리병창에 서서, 산등성이를 타고 부서져 내리는 금빗살과 가을바람을 장단삼아 춤을 추는 듯 한들거리는 붉은 단풍, 노오란 잎들의 가을 축제에 벌어진 입을 다물질 못하였습니다. 소중한 그 무엇을 다루는 듯 연신 눌러 대는 카메라의 셔터소리도 차라리 춤을 추기 위한 장단이었습니다.
중턱쯤엔가에서, 오가는 山行길손과 나누는 한 잔의 녹차에서, 나누는 삶의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감상일까요?
아직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낙엽을 밟으며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운 아침입니다.
최근에 山行을 다니고 있다는 佳人의 말이 내 가슴을 맴돌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이 바로 山에서 만나는 이들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의 만남에 동참한 佳人에게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만남에 동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自然에 감사합니다.
自然의 우리의 故鄕입니다. 그 자연의 표상을 꼽으라고 한다면 돌, 바람, 구름, 나무 등일 것이고, 그런 것들을 모두 넉넉한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같은 곳이 바로 山입니다. 그런 山에 佳人이 入山함을 누구보다도 기뻐합니다.
山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敬畏의 대상입니다. 아무리 낮고 하찮은 山일지라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진 마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간사할 지라도 山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변함없는 겸손과 겸양의 美德을 가르칩니다.
서양인들에게 山은 정복의 대상일 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立身修養의 대상이요, 삶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生活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山에서 구하였습니다. 매서운 한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이 그렇고, 봄이면 여기저기서 채취하는 산나물이 그렇고, 집안에 憂患이 있으면 山神靈님께 의지하였으며, 심지어는 生命의 신비로움까지도 祈願하였습니다. 山神님께 기도 드려 우리를 잉태하였고, 죽어서 우리는 다시 山으로 돌아 갑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山神이 노하여서 그렇다며 山神님께 기도드리고, 제를 올렸습니다. 한낱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지 몰라도 그러나 적어도 山이 우리 歷史와 함께 해 왔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해와 달은 우주의 기본입니다. 인간의 命運이 우주의 섭리에 달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대의 해와 달은 하늘의 의도를 표징하는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그 섭리를 주관하는 하늘의 뜻에 따라 내려오는 天孫들은 山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단군님, 그는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터를 잡았고, 신라의 육촌주도 각각 山으로 내려섰으며, 가락국의 수로왕도 龜旨峰을 출생의 무대로 삼았습니다.
흔히들 우리 民族은 백두산의 精氣를 받았다고 말하며, 그 氣가 한라산에 이르고 있다고들 합니다. 바로 그 氣가 山에서 시작했고 山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山은 우리에게 神聖하고 靈驗한 敬畏의 대상입니다.
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과는 달리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늘 푸른 마음으로 우리를 맞아 줍니다. 절대로 흔들림이 없이 말입니다.
山은 우리가 가난하다고 해서 또는 지위가 높다고 해서 차별하지는 않습니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병든 자이건 아니건, 권력을 누리는 자이건 누림을 당하는 자이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한결같은 마음을 열어 줍니다.
山은 우리에게 속이질 않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진실함을 알려 줍니다. 해마다 네 번의 새옷을 갈아 입곤 하지만,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옴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온갖 고통과 고난을 참고 견디며 정상에 오르면, 오른 만큼의 기쁨과 함께 忍耐의 달콤함을 가르쳐 줍니다.
山은 우리에게 眞理를 깨우쳐 줍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음을 알려 주고, 정상에 오르는 길보다는 내려 오는 길이 더 험난함을 말해 주기도 합니다.
山은 우리에게 淸淨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어지럽고 험한 속세를 벗어 나서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해 주며, 자신의 마음에 찌든 때를 씻게 해 줍니다. 그래서 神仙들이 사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름다운 계곡의 맑은 물과 새소리, 그리고 푸르름을 통해서 우리가 가끔씩 잃어버리곤 하는 맑고 고운 마음을 되찾아 주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건강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그러나 그많은 것도 우리에게 주기만 할 뿐이지 절대로 대가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佳人이 山行을 시작했다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서 山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山처럼 푸르고 맑은 山人이 되십시오. 山에서 만난 인연은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언제 어느 山이 될 진 모르지만 山에서 우연이 만날 인연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가을도 깊어 늦가을, 초겨울이 시작됩니다. 山行의 참맛은 초겨울이라고들 합니다. 혼자서 호젓하고 조용한 山行을 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문경의 운달산이 바로 그런 山입니다. 아마도 11월초순경이면 첫눈이 내려 호젓하고 조용한 山行을 하기에 좋을 것입니다.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山行하셔도 좋고, 아니면 애인과 함께 山行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너무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진 마세요. 호젓한 분위기를 깨기가 쉬우니까요. 3~5명 정도가 적당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초겨울의 山行이라도 한 겨울의 山行처럼 준비하셔야 합니다. 아이젠과 스패츠, 그리고 윈더자켓과 두터운 옷 상의 한 벌정도는 갖추세요. 그리고 뜨거운 녹차나 커피도 좋고요.
山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1997 . 10. 21
치악의 紅葉에 반하여 설레이는 이 아침에.
박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