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살이 2012. 9. 16. 22:58

속리(俗離).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 속리산(1,058M)

 

두산 백과 사전에 따르면, 784년(신라 선덕여왕 5)에 진표(眞表)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 수도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 하였고, 광명산(光明山)·미지산(彌智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오늘 산행의 종착점은 문장대 문장봉. 3번을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가진 문장대(文藏臺:1,054m).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 구름과 맞닿는다 하여 문장대를 일명 운장대(雲藏帶)라고도 한다.

 

상주 화북 오송폭포쪽에서 올라 문장대-신선대-경업대-법주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매표소 앞에서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은 작은 돌 계단. 양 옆으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만든다.  

 

 

 

 

 

 

아직 땀 방울이 채 가시기도 전 잠시 비켜 선 오송폭포에서 마음을 씻는다. 잠시 나마 속세와 이별하기 위한 준비일까?

다리를 건너며 그 아래 흐르는 물에 마음도 내려 흘려 보낸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안해진다"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곳에서 마음을 씻고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 앞으로 오를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이제부터 고요한 묵상, 침묵과의 대화를 위해 묵주를 손에 들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한 걸음에 내려놓고, 한 방울의 땀에 시름을 씻으며, 고통과 벅찬 숨에도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되새긴다.

 

후회와 고통, 긴 숨을 반복해가면서 투덜거려도 보고, 쉼을 고대해 보기도 한다. 멈춤의 발걸음은 고통을 잠시 잊게 하기도 하나, 찰나일 뿐...... 이내 고통은 땀으로 신음을 쏟아내고, 그 가운데로 고통스럽고도 간절한 기도의 소리 울린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실 때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고통은 그 때의 그것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것'임을 되뇌인다. 이 때는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입에서는 짧고 벅찬 숨을 토해내면서도 묵상으로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해 혼신의 기도를 바치면 마침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다. 

 

그렇게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고통의 시간은 우릴 다시금 담금질하고, 침묵의 완성으로 이끈다. 

 

 

 

 

 

 

 

 

 

시간이란 묘한 것. 잊게도 하고 기억하게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

그리고 시간은 희망을 가져 온다. 

 

 

 

 

 

 

한 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산행 초입같은 풍경이 지난다. 그리고 다시 함께 한 산우님들의 염원과 격려는 마침내 빛을 구한다.

 

 

 

 

 

 

하늘 높이에서 만나는 바위들의 찬란한 비경. 그것이 마침내 모든 것을 털어낸다.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게 한 다음에서야......

 

 

 

 

 

 

 

그리고선 우리는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감사함보다 더 행복하고 거룩한 것은 없다.

 

 

 

 

 

 

 

 

함께 한 시간과 땀은 언제나 "우리"를 기억하게 한다. 속리는 이곳 문장봉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기도와 함께 마침내 완전함으로 태어난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

 

 

 

 

 

 

 

 

 

 

문장대에 둘러 앉아 너와내가 함께 우리 되어 마음을 나눈다. 정을 나눈다. 사랑을 나눈다.

 

강남스타일과 강북스타일로 나뉘었다지만, 오가는 반찬과 과일들은 경계가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귀한 것 따뜻한 것. 금방 지은 것들을 넉넉히 싸온 것은 나누는 사랑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다. 오르는 계단마다 한 발짝씩 욕심을 버리고 또 버렸기에 더 나누기 쉬운 법......

 

 

 

 

이제 버린 것을 채우려 다시 걷는다.

 

 

 

 

 

쥐가 난 형제님을 신선대에서 기다린다. 함께 모여 걱정하고 치료한 뒤, 쉼의 여유를 위해 신선대에서 당귀로 담근 신선주를 마신다.

 

 

 

 

 

 

 

 

앞으로 5.4km. 이제 절반이다. 하지만 마음은 간사해서 내리는 동안 욕심을 채우고, 헛된 욕망을 채운다.

 

 

 

 

 

 

 

 

딛고 선 바위에서 다시금 온 길을 되돌아 본다. 하늘 향해 누워 세상을 향한 마음을 열어 본다.

 

내려도 내려다 정지해 버린 듯 남은 길 그 거리는 마음의 조급함 만큼이나 길게 남았다. 끝없어 보이는 3.2km. 매번 보이는 이정표는 바로 이 거리에서 멈췄다. 이곳에서 슬금슬금 자신도 모르게 생겨버린 욕심을 버리라는......

 

 

 

 

 

 

나뭇가지 몇 가지로 지탱할 무게가 아님에도 우리도 등지어 본다. 우리가 진 짐이 이만큼일까? 아님 이보다 더 클까?

 

세심정에서 다시 마음을 씻는다. 그 짐도 내려 놓기로 한다.

 

 

 

 

 

 

 

 

 

 

 

 

 

속리산 법주사. 그 명찰 바위에 새겨진 불경과 부처님. 이 땅 선조들의 염원을 담아 지어진 거대 불상과 팔상전. 쌍사자석등 사이로 본 대웅보전. 그 모든 찬란함과 화려함, 그 천년의 역사를 감로수 한 잔에 시름과 함께 내려 놓다.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 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우리를 항상 사랑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

 

기도는 기도하는 대상에게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로 시작해서

'감사합니다.'로 전개하다,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로 승화되어

결국에에는 언어를 넘어선 온전한 있음 그 자체가 된다.

 

오늘 산행에서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고 계심을 깨달았다면 그것이 행복이며, 그것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