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공감-피아니스트 임화경의 슈만의 글 향기
당신은 클라라를 꿈꾸고 계십니까?
당신은 일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음악을 즐기고 계시나요?
이렇게 묻는다면 연주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손 끝으로 여운까지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임화경에게는 연주 시작과 함께 묻고 싶었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늘 슈만 사랑을 외치며 슈만에 대한 아주 세심한 구석까지 애정과 열정을 보인다. 그런 그녀가 혹 슈만이 지독히도 사랑했던 클라라에게 질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할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통상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는 잔뜩 긴장한 채 그 첫 음을 들려주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재치있는 매니아 관객들은 이러한 연주자의 심리 상태를 단번에 알아 차린다. 그러나 임화경은 달랐다. 다른 연주자들의 사뿐사뿐 조심스런 걸음걸이와는 달리 성큼성큼 큰 걸음걸이와 늘 왼손은 피아노 모서리를 짚고서 인사하는 스타일에서 긴장은 사라지고 없다. 그녀가 그만큼 프로이기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그만큼 그녀가 슈만에 빠져 지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붓고 있기에 그녀는 당당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날 연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피아니스트 임화경은 피아노 현의 떨림을 가장 잘 아는 연주자중 한 사람이다. 그 떨림의 끝을 정확히 읽고 있으며, 그 떨림이 관객의 가슴에 어느 정도까지 전달되는지도 알고 있다. 관객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그 짜릿한 전율의 깊이와 절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에서 여운의 단절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떨림 여운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떨림의 끝 자락 가장 적절한 여운의 끝을 기다리는, 허공에서 떨고 선 그녀의 손에서 그녀의 즐김은 빛을 발한다. 마치 수천 km상공에서 먹이를 노린 채 지켜보고 선 매의 기다림 같다.
때로는 깊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찬양되는 수식어보다 그 짧은 묘미를 읽어내는 인내력과 소화력을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 더 큰 기쁨이 되기도 한다.
한 낮의 여름만큼이나 그 뜨거움을 쏟아낸 후 어루만지듯 불어주는 초여름 초저녁의 연바람을 악기에 불어넣어 관객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녀다. 사뿐사뿐 눈 내리는 모습보다 더 다소곳한 정감이 서려 있다.
성큼성큼 무거운 듯 한 그녀의 발걸음과는 도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녀의 소리는 우리에겐 고향같은 푸근함을 담은 정감이 있다. 여운이 긴 꼬리를 남길 지라도 그 꼬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인내를 즐기는 그녀. 아니, 어쩌면 인내가 아니라 사라짐의 극치미를 즐길 줄 안다. 여운의 맛이 바로 이런 것임을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애끓는 젊음이 열정으로 넘칠 때 자제와 느림 그리고 기다림의 멋은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
공감(共感).
그것은 피아노와 손의 관계처럼 마음이 마음을 건드리는 하나의 음악. 타인의 감정 생활에 상상력을 움직여 그것을 살펴 아는 기술의 극치.
소리가 만들어낸 또다른 감동은 공감이 있기에 가능한다. 한 건반 한 건반이 현을 타고 울릴 때마다 그 떨림이 공간을 타고 전달된다. 그 떨림에는 그녀의 매력을 실었다. 기나긴 기다림이랄까? 그 끝에 오는 것이 비록 순간이지만 오랜 시간으로 느껴지는 기다림의 결실. 흐르는 감동의 정표들을 가슴에 주워담는 순간 우리는 그 여운의 또다른 연주자가 된다. 그 긴 음의 흔적에 자신의 마음을 실기도 하고, 골라 듣기도 하고, 흘려 보내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의 편린들을 재구성해 보기도 한다. 공존의 공감이다.
조각 조각 들을 모아 흐름을 창조한 피아니스트 임화경은 진정 소통의 지휘자. 소통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소통은 마음의 통함이요, 감정들의 화학적 결합이 된다. 공존은 소통을 통해 전율과 감동이 되고, 살아 숨쉬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긴 꼬리의 끝을, 사라져 가는 여운의 흐린 자락을 붙잡고 싶을 때 애끓음이 인다. 잡아 가둔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잡아 두려는 마음은 애착이라 이름붙지만, 가두려는 의사가 없음에도 저절로 가슴에 가두어진다면 그것은 감동이라 이름붙는다.
인위에 의한 가둠이 아니기에 감동은 아름다운 것이다. 흐르는 소리들을 가두려 말고 그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흘러가버린 것들이 어느 새 자신 안에 가둬져 쌓여 간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바로 감상의 참모습이요, 음악의 존재 이유가 된다.
오늘도 자연스러움은 생각을 쫓고, 시간을 쫓고, 가슴에 그 편린들을 묶음을 담는다. 담아 낸다는 것은 연주자의 의무이자, 필연이지만, 담는 건 관객의 자유 선택. 우리는 오늘도 그 담아짐을 쫓아 자신의 귀를, 자신의 가슴을 연다. 그러나 담는 건 자유 의지의 선택이기에 준비가 필요하고,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에 적혀진 전문 평론가와 연주자의 해설을 굳이 읽어 보지 않더라도 열린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담아내고 공감할 수 있다. 슈만을 담으면 어떻고, 슈만을 사랑한 임화경을 담으면 어떠랴. 그것이 담아짐의 진정한 참모습이라면 무엇인들 어떠랴! 그것이 "공감"인 것을......
한 손으로 뿜어내는 부드럽고 애잔함은 두 손 모아 그리는 소리보다도 아름다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담는다. 한 선율이 굵은 빗방울로 떨어질 때 또다른 선율은 가랑비처럼 사뿐히 쏟아내리며 "공존"을 보여 준다.
"共存"
함께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이자, 회상의 원천. 훗날의 회상은 혼자가 아닌 공존으로 인해 기억되고 만들어진다. 공존에서 공감으로 옮겨 감은 사랑이 그 매개물.
그 사랑이 결실을 이뤘다. 그녀의 슈만 사랑이 만든 감동. 언제나 그녀의 연주회는 存在로 남고 기억된다.
문득 슈만 사랑을 이어가는 그녀의 끝은 어디쯤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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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경의 슈만 사랑, 세 번째...”
지난 2006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
1856)의 서거 150주기를 기리며 슈만을 집중조명하기 위해 시작된 피아니스트 임화경의 슈만 작품
순례.
그동안 임화경은 <슈만 순례 1 - 슈만과 친구들>, <슈만 순례 2 - 슈만의 사랑>을 통해 슈만과 그의
친구들인 쇼팽, 브람스, 멘델스존의 작품들이 반영하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세계와 젊은 슈만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8년에 이어질 슈만 순례 세 번째 무대에서는 음악과 더불어 슈만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한 부분인 문학, 즉 그 시대의 음악과 문학의 연관성을 새롭게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계속해서 2009년 슈만이 음악으로 표현하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줄 ‘슈만과 아이들’로 이어
지게 될 이 시리즈는 슈만 탄생 200주년의 해가 되는 2010년 슈만의 음악세계를 총망라하는 슈만 순
례 앙코르 공연을 가지며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슈만의 음악 그 자체만이 아닌 역사상 가장 놀라운 변혁의 소용돌이였던 19세기를 살았
던 한 천재 작곡가가 음악을 통해 반영해 낸 사회, 사랑, 문학, 동경의 세계 등 다양한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될 것이다.
P R O G R A M
Robert Schumann 1810-1856
Papillons 빠삐용 op.2
Gesänge der Frühe 새벽의 노래 op. 133
Kreisleriana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
Papillons op.2
슈만의 초기 작품인 “빠삐용(나비)”은 1829년과 1831년 사이에 작곡 되었다. 그 시기는 슈만이 아직
법학도로 공부를 하면서도 음악에 대학 애착과 정열을 버리지 못하고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을 꿈
꾸며 마음으로는 이미 법학을 포기한 시절이었다.
서적상과 출판업에 종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슈만은 문학에도 매우 조예가 깊었고 글 솜씨도 있어
음악 평론을 쓰기도 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슈만의 음악의 곳곳에서 문학과의 관계
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슈만은 이 곡을 자신의 세 형님들의 부인인 Therese, Rosalie, Emilie Schumann에게 헌정하였으며 1832
년 4월 15일 집으로 보낸 편지에 이 곡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이 곡을 쳐보기 전에
꼭 Jean Paul(쟝 폴)의 ‘Flegeljahren(망나니시절)’ 을 읽어보도록 해요. 그래야만 내가 그 소설에 나오
는 춤의 장면들을 이 음악에 담으려 했다는 것이 느껴지고 이해가 될 테니까요…”
쟝 폴(Jean Paul)은 젊은 슈만에게 문학적 우상 이었다. 1828년 3월 17일 18세 청년이었던 슈만이 친
구 Carl Flechsig 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은 오히려 쉴러보다도 쟝폴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고 까지
쓰여있으며 ‘괴테는 아직 이해가 잘 안 돼’라고 적고있다.
슈만이 가장 즐겨 읽던 이 책은 1838년 슈만이 당시 약혼녀였던 클라라에게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거의 성경책 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편지에 쓰고 있다.
쌍둥이 형제 Walter와 Vult가 한 소녀 Wina를 사랑하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1804/1805년 총 4 권에 걸
쳐 출판 되었으며 어쩌면 이 서로 상반되는 두 성격의 쌍동이 형제가 슈만 자신의 내면 세계를 반영
하고 있는 듯이 느꼈을 가능성도 많다.
Gesänge der Frühe op. 133
이 곡은 슈만이 죽기 전에 출판을 위해 완성한 마지막 곡으로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하기 하루전인
1854년 2월 23일 출판을 위한 초고까지 마친 뒤 자신의 출판업자 F.W.Arnold 에게 보내며 쓴 편지에
이 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5개의 성격 소품인 이 곡은 시인인 베티나(Bettina von Arnim‐독일의 여류시인으로 시인 Achim von
Arnim의 아내이자 Clemens Brentano의 누이)에게 헌정 되며 이 곡은 제목이(Gesänge der Frühe‐새벽
의 노래) 말해 주듯이 다가오는 아침의 감동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장면을 그림처럼 표현하기 보다
는 그 순간의 기분, 그 순간의 감동을 음악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곡의 자필 초본 위에는 ‘an Diotima’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그것이 시인 횔덜린(Hölderlin)과 연
유된 것임은 분명하나, 당시 낭만 시대에 상징적으로 널리 알려졌던 여신 디오티마(Diotima)를 이야
기 하고 있는지 아니면 횔덜린의 Hyperion에 나오는 ‘디오티마 시’에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분명
히 밝혀지지 못하고 있지만 그 시의 마지막 귀절, ‘아름다웠던 너의 태양은 저물고 서리가 어린 이
밤에 태풍들이 싸우기 시작한다’(Deine Sonne, die schönere Zeit, ist untergegangen / Und in frostiger
Nacht zanken Orkane sich nun) 은 몇 달 후 슈만의 정신 착란 증세가 나타날 것을 암시 하기라도 하는
듯 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Kreisleriana op.16
839년 슈만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슈만의 후원자며 친구였던 Simonin de Sire in Dinant에게 보낸
편지에는 “지금 나는 ‘어린이정경’ 과 ‘환상곡 op.17’ ‘유모레스크’ ‘Blumenstück’ 그리고 ‘크라이슬러리
아나’들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크라이슬러리아나’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 제목은 독
일 문학을 아는 사람들 만이 알아볼 수있죠. ‘크라이슬러’는 당신도 잘 아시는 E.T.A. Hoffmann이 쓴
글에 나오는 주인공이죠, 특이하고 격열하며 정열적이면서도 아주 현명한 성격의 음악가죠.. 이 곡
은 아마 당신 마음에도 들것입니다.” 라고 적고 있다.
이 귀절은 슈만이 호프만의 소설 ‘크라이슬러리아나’의 주인공을 음악적으로 다시 한번 표현하는
것을 뜻하고 있지만 이것을 ‘프로그램 음악’과 혼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 된다. 즉 슈만은 그 소설
의 내용 자체를 다시 한번 음악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크라이슬
러’의 성격적인 측면을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재 조명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만에 있어서 문학이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크라이슬러리아나’의 작가 E.T.A.
Hoffmann의 문학에서는 호프만 자신이 작곡가이기도 했던 만큼 음악이 그의 문학에서는 아주 중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 R O F I L E
피아니스트 임화경
임화경은 서울 생으로 서울예고 재학시절 빌헬름 켐프의 수제자인 데트레프 크라우스 교수에게 배
우기 위해 독일로 건너가 에센의 폴크방 국립 음대에 입학하여 DAAD(독일 정부 장학금)을 수혜하였
던 재원이다.
그 후 독일의 하노버와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최고 전문 연주자 과정을 수료 하였으며 국제
리스트 아카데미에 참가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국내 시절부터 육영 콩쿨과 틴에이저 콩쿨에서 대
상을 수상하였으며 독일 에센의 폴크방 콩쿨에서 1위를 수상하였다.
1979년 국립 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시작하여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수십 차례의 독주회를 가
졌으며 1997년 9월에는 독일에서 개최되는 "베를린 음악제(BerlinerFestwochen)"에서 Deutsche
Sinfoniker와, 10월에는 뮌헨에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과 협연하였다.
특히 1996년 다름슈타트 현대 음악제 50주년 기념 개막식에서 협연 하여 현지 언론의 대단한 호평
을 받았으며 1998년에는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 최고 연주자상(Kranichsteiner Musikpreis)을 수상한
뒤 1999년 주한 독일 문화원 초정 독주회로 시작하여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거의 모든 한국의 현대
음악제에서 연주하였고 여러 대학에서 특강 및 세미나와 마스터클래스로 현대음악을 통한 고전음
악의 새로운 이해에 주력하며 2000년 24개 쇼팽의 연습곡전곡을 순회연주 하였다.
2000년과 2001년 베를린 울트라샬 페스티발에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미국 버팔로(Buffalo)
대학에서 세미나 및 독주회를 가진바 있고 2003년에는 세계 여성음악제 초청연주 및 서울 시향 초
청으로 헝가리 지휘자 지외르지 라트와 함께 내한하여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하였다.
2004년 독일 쾰른 작곡가 협회 초청 연주, 2005, 2006년 독일 칼스루에 메디아센터(ZKM‐ Zentrum für
Kunst und Medientechnologie)의 초청 연주를 비롯하여 현재 독일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고, 청소년 교육에도 관심을 보여 2005, 2006년 독일 에센 음악가 협회
초청으로 개최된 청소년을 위한 마스터클래스에서 독일 저명 음악신문인 NMZ(Neue Musik Zeitung)
음악가 협회란(DTKV Westfalen)에서 호평을 받아 2007년 12월에도 다시 초청되었다.
현재 울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