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청년들과 볼거리, 오페라 리날도
바로크(Baroque)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가 국내에서 초연되면서 오페라계가 떠들썩 했고, 온갖 매체를 통한 광고가 요동쳤다.
아주 우연히 오페라 리날도 공연에 초대되어 한국 초연의 마지막날, 감격적인 대면을 하게 되었다.
기껏 베르디의 오페라 몇 개를 전부로 알고 있는, 오페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오페라 및 헨델의 음악인 바로크에 대해 사전 지식을 공부하고 가야만 하였다.
바로크. 르네상스 말기인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를 바로크 시대라 하는데, 종교개혁을 통해 커다란 사회적 변동을 겪었던 이 시기에에는 이전 시대와는 다른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교회 중심의 음악이 궁정과 귀족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을 지닌 바로크의 뜻처럼 예술 분야를 비롯하여 모든 생활양식들이 '극히 장식적이고 요란하며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규모가 커지고 표현의 폭이 넓고 다양한 음악 양식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에는 쳄발로, 오르간 등의 건반악기와 현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같은 훌륭한 악기들이 협주풍 양식과 화려한 독주들이 등장하여 성악과 기악과의 구별이 뚜렷해진 특징이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면모를 갖춘 오페라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이 날 음악을 맡은 오케스트라의 구성 악기도 이들과 매우 흡사했다.
오페라 이전에는 음악과 더불어 펼쳐지는 연극, 즉 음악극으로 불리웠으나, 베네치아에서 상연된 '테티와 펠레오의 혼례'라는 작품에 '무대작품'이라는 뜻의 '오페라 세니카'라는 제목이 붙으면서 이후 음악극을 '오페라'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오페라(Opera)는 라틴어 'opus(작품)'에서 유라한 것으로 '음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오페라는 음악으로 처리한 대사 부분을 오케스트라가 반주에 맞추어 연주하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연극과 구별되며, 음악적 요소를 바탕으로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 각 예술 부문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한데 어우러져 비로소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된다.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스토리가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이 온갖 의상과 분장을 갖추고 미술적인 무대장치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된다.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를 독창곡 또는 아리아라 하며, 대화체에 가까운 낭독 형식을 레치타티보(recitativo)라 한다. 극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오케스트라 음악이 흐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바로크 시대의 음악적 특징은 바흐와 헨델에 의해 집대성되어 그 꽃을 피웠다.
그런데, 이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헨델이 만든 '오페라 리날도'가 마침내 국내에서 초연된 것이다.
이제 오페라 리날도 속으로 떠나보자.
알려진 대로 작곡은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이 했고, 초연은 1711년 2월 24일, 영국 런던 헤이마케트 여왕 극장에서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제1회 십자군 시대(1096~1099)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다.
헨델이 영국에서 작곡한 최초의 이탈리아 오페라 "리날도"는 1711년 2월 24일 초연되자마자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어 연일 초만원 사태를 빚으면서 보름 동안 공연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등장인물은 카운터테너 또는 알토가 맡는 십자군 총사령관 고프레도, 소프라노가 맡는 리날도의 약혼녀이자 고프레도의 딸인 알미레나, 알토가 맡는 십자군 영웅 리날도, 바리톤이 맡는 마법사 마고, 베이스가 맡는 예루살렘의 왕이자 아르미다의 연인인 아르간테, 그리고 소프라노가 맡는 여자 마술사이자 다마스코의 여왕 아르미다가 있다.
원작에는 고프레드의 형제인 에우스타치오가 있었지만, 이 날은 그 역을 하는 배우를 볼 수가 없었다.
이 오페라에는 영화 파리넬리에서 보여 주었던 거세된 카스트라토가 아닌 주인공 리날도 역에 메조 소프라노 로라 폴베렐리(Laura Polverelli)가 맡아 마이크조차 사용하지 않고 공연했다. 출산한 지 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메조 소프라노가 이 배역을 맡음으로서 리날도 장군역의 힘차고 기상어린 모습을 엿보기에는 다소 부족했다고 느껴졌다. 거기에다 의상에 유달리 신경을 썼다고는 하지만 가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어진 의상 탓에 그녀가 장군 리날도로 보이기 보다는 배역을 맡은 여성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점은 아쉽기 그지없다.
내친 김에 카스트라토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영화 파리넬리에서는 변성기 이전에 거세하여 소년의 목소리를 지닌 성년의 남자 가수 카스트라토(castrato)가 이 역을 맡았었다. 카스트라토는 소프라노 또는 알토 음역의 소리를 낸다. 이들의 목소리는 성대의 순(脣)이 자라지 않아서 소년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가슴과 허파는 성장하여 어른의 힘을 지니기 때문에 맑고 힘있는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16세기에 교회가 여성들이 노래하는 것을 금하자, 이들이 여성을 대신하여 교회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로 만드는 일을 금했지만 1588년의 교황 교회 성가대는 카스트라토 단원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페라 극장의 영웅 카스트라토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말까지로 알려져 있다. 오페라에서 주로 여성의 역을 담당했지만 점차적으로 남성의 역까지 맡게 된다. 그들의 목소리를 위해 만들어진 이 시대의 오페라 아리아들은 이들의 성악적 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8세기 남성 가수의 상당수가 카스트라토였으며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는 카를로 브로스키(일명 파리넬리)였다. 카스트라토가 비인간적인 방법에 만들어 진다는것 때문에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19세기에는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성당 합창단과 궁중에서는 옛날 가성 발성을 남자 어린이에게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 음악에 필요한 높은 성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카스트라토가 사라지게 되고, 거세를 하지 않고 피나는 연습끝에 여성의 음역을 내게 된 남성 가수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을 카운트테너라고 한다.
원래 카운터 테너라는 용어는 르네상스 시대 다성음악(Polyphony) 에서 테너음역의 바로 윗 성부에 해당하는 '콘트라테노르 (Contratenor)'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 성부는 가성(Falsetto)을 사용함으로써 점차 여성의 음역에 가까워지고 현재 여성의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음역에 해당하는 소리를 내게 되었으므로 음악사학에서는 그냥 '남성 알토(Male Alto)' 라고 부르고 또 프랑스에서는 오뜨-콩트리(Haute-contre)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말은 가벼운 하이(높은)테너에게 붙이는 경우란다. 이탈리아에서는 팔세티스트(Falsettist)라고 한다.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를 음악용어에서 엄격히 구별하는 이유는 소리내는 방법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를 겪지 않은 남성이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한 경우이고, 카운터테너는 변성기를 이미 거친 남성이 가성에 의해 여성의 알토 파트에 상당하는 음역을 담당하는 경우이다. 가성에 의한 발성은 그 음역에 한계가 있어 카스트라토 만큼 높은 음역을 구사하기 힘들어서 그들은 알투스(Altus)라고도 불린다고 알려져 있다.
주목할 점은 마고역에 한국 사람인 바리톤 박승혁이 출연한 점이다. 마고는 나무로 분장하여 2막에서 몇 장면에 출연하며 바리톤 음색의 특징을 잘 보여 주었고, 그것이 커튼 콜때 많은 박수를 받은 이유였다.
또다른 한국 사람으로는 바다에서 리날도를 아르미다에게 유인하는 두 사람의 인어였는데, 이들은 상반신은 거의 나신상태였고, 하반신은 인어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커튼 콜에서 이들이 한국 사람임을 알았다.
나머지 성악들은 모두 발성좋은 성악가들이니 만큼 멋진 아리아를 관객들에게 들려 주었다.
그런데, 이 오페라에서는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다. 그림자 청년들이 그들이다. 성악가들이 움직이는 거대한 말 조각상이나 배, 동상의 기단 위에 앉거나 서서 노래를 할 때, 성악가들은 가만히 서 있었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연기자들이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바퀴 달린 말과 배, 거대한 암벽동굴 등을 밀고 다니며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무대 위의 무대를 연출한 것이다. 특히 주인공들의 등 뒤에서 끊임없이 펄럭이는 10∼15m 길이의 붉은색과 흰색 망토는 그 효과를 더했다. 바로 그림자 청년들이 그림자처럼 이것들을 움직이고 연출했다. 모두가 한국인이었지만, 그 음악적 소양이나 수준이 여간아님이 분명하다. 전개되는 스토리나 각 등장인물의 대사를 모조리 이해하고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동선을 그려야 할 지를 미리 다 알아야 제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기에 그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고도 수준높았다고 할 수 있다.
피치의 연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역들을 돋보이게 해 준 연기자 23명의 힘이라고 어느 기자가 기사로 쓴 것이 정말이었다. 그들은 긴 공연시간인 3시간 동안 쪼그려 앉은 채 바닥을 기어 다니며 수레를 끌었고 잠시도 쉴 틈없이 망토를 펄럭였다. 성악가를 태운 3.2m 높이의 말 조각상을 음악에 맞춰, 고정된 핀 조명이 있는 곳까지 동선을 따라 정확히 그것도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신기에 가까웠다. 특히 십자군 영웅들이 칼싸움을 하는 마지막 대회전은 자칫 조그만 실수라도 있으면 성악가들의 큰 부상마저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움직이는 기단의 거리가 잘못되면 칼 싸움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거나, 혹은 너무 가까우면 충돌 등이 발생하거나 싸워야할 등장인물들이 자칫 포옹하는 장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치는 커튼 콜 때 연기자들을 가장 먼저 무대에 올려 껴안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을 두번씩이나 무대로 불러내 관객들에게 인사시켰다. 출연 성악가들은 모두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왔지만, 얼굴을 드러낸 연기자들은 모두 한국인이어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들은 “바로크 오페라라고 해서 갑옷 입고 멋지게 나오는 줄 알았다”던 젊은이들이었단다. 무릎이 다 까지고, 신발이 찢어지는 힘든 연습으로 중간에 그만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오페라에 처음 참여한 젊은이들을 불과 일주일 만에 멋진 움직임을 창조하는 주인공으로 조련해 낸 피치의 리더십은 ‘거장’이란 말이 그저 붙여진 이름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피치는 ‘왜건을 탄 성악가들’ 컨셉. 치렁치렁한 중세의상을 걸친 성악가들은 걸어다니는 대신 1m 높이의 왜건 위에 동상처럼 서서 왜건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의지한 채 성악에 집중하게 했다. 동선을 좇아다니는 부담에서 벗어난 성악가들은 가벼운 손동작만으로 연기하며 발성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것은 연출가 피치의 배려이자 의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왜건을 움직인 검은 옷차림을 한 23명의 그림자 청년들은 100구역으로 미세하게 나눠진 무대에서 조명과 함께 발빠르게 움직이며 극의 활력을 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무대 위의 무대 연출은 관객을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성악가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그 발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려 했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떨어질까 하는 불안함이 성악가들의 모습에서 다소 보였고, 그것은 보다 과감한 연기로 이어지질 못한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도 보는 관객 또한 불안감이 있었기에 설령 그 의도대로 성악 발성을 잘 해냈다손 치더라도 관객에게는 불안한 발성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수도 있었음을 놓친 것은 거장 피치의 실수였을까?
공연 1막이 막 올랐을 즈음 우두커니 서서 연기하는 성악가들이 이상했었다. '왜 저 왜건 위에 올라타서 연기할까?' 아무리 성악에 더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도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주 길게 늘어뜨려 펄럭이는 망토와 2막에서 전개된 바위 장면 등은 그것이 그저 노래 잘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연출가의 의도된 연출이었던 것이다.
긴 망토에서 알 수 있듯이 연출가 피치는 등장인물들의 의상에서 엄청난 신경을 쏟아 부었다. 대작 영화에서나 봄직한 고전적인 미가 살아 있는 10세기 옷들이 마치 패션쇼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럽고 화려한 귀족정치의 맛과 멋이 잘 드러난 의상이었더. 특히 길게 늘어뜨린 망토의 펄럭임은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제공했다. 1막에서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 지루함이 넘치는 공연에서 유일하게 움직임으로 화려함으로 졸음을 쫓아 내는데 한목한 것이 망토였다. 특히 악역을 맡은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는 붉은 색 망토를 착용하였는데, 아르간테의 망토는 이 날 등장한 인물들 중 가장 길고 큰 것이었다. 주연인 리날도와 고프레도, 알미레나의 망토는 아이보리색 계열의 망토였다.
또한 화려한 조명이 고전미와 귀족미 넘치는 의상과 잘 조화되게끔 비춰주었는데, 주역인 리날도와 고프레도가 나타날 때에는 푸른 색 계열이나 다른 색으로 조명을 비춘 반면, 악역을 맡은 아르간테와 아르미다의 출연시에는 그 배경에 붉은 색 조명을 비춰 그 색에 의해 역할의 구분을 명확히 하며 관객에게 특정인이 어떤 배역을 맡은 것인지 암시하는 역할을 했었다.
무대장치의 경우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온 것이니 만큼 스펙터클한 장면 연출에 어울리는 매머드급 무대장치들이 많이 등장했다. 배경이 되는 무대연출을 위한 화려한 궁전의 기둥, 그것이 변화하면서 감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바다 위에 괴물 얼굴같은 모습의 동굴과 입구를 막고서 개폐식으로 움직이는 양 손 등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느끼게 했고, 다소 신화적인 냄새도 나게 하였다. 여기에다 두 마리의 용과 바이킹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배들의 모습 또는 멋진 장치들이었다. 이런 준비들에 비한다면 소품인 칼은 보잘 것 없는 장난감 같은 인상을 주어 칼 싸움이나 장군 이미지를 보여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초연당시 대본을 맡았던 힐(Aaron Hill)은 역사가이자 과학자였고 무대장치가이기도 했다. 그의 상상력이 한껏 날개를 편 환상적인 무대에서 '새들은 노래하고 미풍은 살랑거리고 (Augelletti che cantate)' 가 노래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새들이 무대 위를 날아다니게 해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고 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이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날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Camerata Antigua Seoul) 오케스트라의 바로크 음악의 원전을 그대로 재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다. 이른바 원전연주 내지 정격음악을 구사한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 연주하는 방식이다. 최근에 비틀즈의 곡들을 바로크 스타일로 연주한 "Beatles Baroque III"이란 음반이 작년 연말에 발매된 바 있는데, 이 연주스타일과 악기의 구성이나 그 음색 등에서 매우 비슷하여 좋았다. 뿐만 아니라 지휘자 기욤 투르니에르(Guillaume Tourniaire)는 등장인물의 독창 부분에서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대결 등의 극적인 장면에서 피치를 올리는 등 차분하게 강약을 조율하여 멋진 음악을 선물했다.
이 날 선보인 아리아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알미레나)', '사랑의 지체는 괴로운 일 (Ogni indugio, 리날도)', '진정한 사랑에 즐거움 넘치네 (Bel piacere, 알미레나)'의 세 곡이 멋졌다.
"홀로 울게 하소서"는바로크 오페라 아리아중 가장 사랑받는 아리아다. 영화 "파리넬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아리아지만, 이 아리아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아리아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노래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총 3막 6장으로 구성된 오페라 리날도.
제 1막 1장. 1099년,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십자군의 사령관 고프레도가 십자군의 영웅 리날도와 마주하고 있다. 고르레도는 리날도에게 예루살렘 공략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하면서, 승리의 대가로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겠다고 약속한다. 고프레도의 딸 알미레나와 은밀히 약혼한 사이였던 리날도에게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제안이었다.
알미레나는 "용맹하게 싸워 이기고 돌아오소서"라고 그를 격려하고 리날도는 "사랑의 지체는 괴로운 일"을 노래하면서 승리를 쟁취하여 하루속히 사랑하는 알미레나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었던 사라센왕 아르간테가 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3일간의 휴전을 제안하자 고프레도는 받아들인다. 그때 여자마법사 아르미다(아르간테의 연인)가 불을 내뿜는 용을 타고 나타나, 리날도를 납치하지 않고서는 십자군을 패퇴시킬 수 없다고 선언한다.
제1막 2장.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리날도와 알미레나는 새들이 노래하고 미풍이 살랑거리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랑에 취해있다. 그 때 별안간 아르미다가 나타나 마술의 힘으로 알미레나를 납치해 간다. 리날도를 유인하는 미끼로 삼으려는 속셈이었다.
고프레도는 기독교인 마술사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심한 리날도를 위로하고, 리날도는 "오라, 바람이여, 회오리바람이여, 우리를 도우라"고 격정적으로 노래한다.
제1막은 매우 재미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성악들의 움직임이 적고, 부르는 아리아 역시 후렴구가 3번 이상 반복이 계속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매우 지루하게 만들었다.
제 2막 1장. 고프레도와 리날도 일행이 구원자를 찾아 바닷가를 걷고 있을 때 아름다운 노래 소리와 인어들의 유혹적인 춤이 그들의 발을 멈추게 했다.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날도는 알미레나를 구출하러 가기 위해 인어들이 이끄는 마법의 배를 탔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면 지옥과도 맞서겠다고 노래한다.
제2막 2장. 아르미다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마술궁전에서는 아르간테가 알미레나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만, 알미레나는 "홀로 울게 하소서" 라는 애절한 아리아를 부르면서 외면한다. 한편 아르미다는 마법의 배에 실려온 리날도를 해치려 생각하지만 오히려 첫눈에 반하고 만다. 리날도가 거들떠보지도 않자 아르미다는 알미레나로 변신하여 그를 유혹하려 했으나, 그것조차 허사였다. 리날도는 아르미다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라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른다 알미레나로 변신한 아르미다를 리날도는 꿰뚫어보고 있었지만 아르간테는 진짜 알미레나로 착각하여 수작을 부린다. 그러자 아르미다는 자신도 리날도에게 넋을 잃었던 주제에 아르간테를 배신자라고 몰아붙인다.
제2막에서는 지루함이 의상이나 무대 혹은 소품의 화려함에 의해 다소나마 가려짐으로써 지루함을 들 수 있었다. 무대장치와 조명의 변화, 화려한 의상과 고전적인 배들, 반라의 인어들이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에도 이날의 하일라이트인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2막에서 알미레나역의 로라 포베렐리의 노래가 있어 좋았다.
제 3막 제1장. 멀리 아르미다의 성이 보이는 산자락에서 고프레도는 마고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자 마고는 마술사의 주술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닌 마법의 지팡이를 그에게 준다.
제 3막 2장. 아르미다는 다시 알미레나를 없애려하지만 그 때 리날도가 나타나 가로막는다. 알미레나는 아버지와 연인을 다시 만난 기쁨에 겨워 "진정한 사랑에 즐거움 넘치네"를 노래한다. 알미레나와 리날도에게 넋을 잃고 반목했던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 전투는 리날도의 승리로 끝나고 두 연인은 행복하게 맺어진다.
제3막에서는 다소 황당하기까지한 칼 싸움 장면이 있었고, 아르간테와 아르미다의 되찾은 사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비약이 있었으며, 이야기 전개가 너무 빠르고 다른 막에 비해 엉성함이 있었다.
오페라의 거장 루이지 피치의 오페라 리날도가 한국에서 초연되었다는 사실에 즐거운 기대를 하고 간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재미없는 오페라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는 성공적인 볼거리를 제공했고, 아름다운 아리아를 보여 주었다.